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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걸불

지난해 추석 때입니다. 고향 마을 뒤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마친 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에 들렀습니다. 집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벽은 곧추서 있지도 못하고 비스듬했습니다. 안방은 거미들이 씨줄 날줄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 꼿꼿하던 기둥이 노인 등허리처럼 구부정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거처하시던 사랑채는 더했습니다. 기둥은 나동그라졌고 주춧돌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주춧돌바닥이 울퉁불퉁했습니다. 주춧돌이라면 으레 바닥이 판판한 줄 알았는데. 기둥밑동을 보니 고르지 못한 돌바닥에 맞춰 그랭이질을 해놓았습니다. 돌의 생긴 모양에 맞춰 기둥 밑 부분을 다듬는 것을 ‘그랭이질’이라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살던 집이 지금까지 그나마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은 저 울퉁불퉁한 주춧돌에 맞게..
지난해 추석 때입니다. 고향 마을 뒤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마친 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에 들렀습니다. 집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벽은 곧추서 있지도 못하고 비스듬했습니다. 안방은 거미들이 씨줄 날줄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 꼿꼿하던 기둥이 노인 등허리처럼 구부정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거처하시던 사랑채는 더했습니다. 기둥은 나동그라졌고 주춧돌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주춧돌바닥이 울퉁불퉁했습니다. 주춧돌이라면 으레 바닥이 판판한 줄 알았는데.
기둥밑동을 보니 고르지 못한 돌바닥에 맞춰 그랭이질을 해놓았습니다. 돌의 생긴 모양에 맞춰 기둥 밑 부분을 다듬는 것을 ‘그랭이질’이라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살던 집이 지금까지 그나마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은 저 울퉁불퉁한 주춧돌에 맞게 기둥을 그랭이질 해놓은 덕분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집이 가난하여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왜 남들처럼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지 못하느냐고 불평불만을 했습니다. 방황도 했습니다.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습니다.
문득 고르지 못한 돌에 맞춰 그랭이질한 저 기둥을 닮았더라면…. 회한이 밀물처럼 몰려왔습니다.
다행히 뒤늦게라도 수필을 배우고 나니 바닥이 판판하지 못한 돌도 그랭이질하기에 따라 좋은 주춧돌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 비록 가방끈이 짧아 바탕은 고향집 주춧돌처럼 울퉁불퉁하지만, 나름 공을 들여 그랭이질 한 수필집 『잉걸불』을 펴냈습니다. 지난번 『민얼굴이 향내가 더 난다』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글솜씨가 어설픕니다. 하지만 저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빨간 잉걸불에서 갓 구워낸 고구마 맛 같은 삶으로 그랭이질할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950년 경인년(庚寅年) 음력 시월 열이렛날 경북 성주 새말에서 태어났다.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첩첩산중 산골 마을에서 소먹이고 꼴 베며 유년기를 보냈다. 열아홉 살 되던 해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40년 가까이 중앙과 지방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몇 해 전에 퇴직했다.
2008년《문학세계》《한국문학예술》에 수필을 발표하여 늦깎이 등단을 하였다. 수필집『우정이는 행복바이러스를 꿈꾼다』『민얼굴이 향내가 더 난다』에 이어 『잉걸불』을 펴냈다. 제2회 포항소재문학상, 제9회 공무원연금수필문학상을 받았다.
앞으로 남은 8만 시간, 글쓰기로 인생을 디자인하려 한다. 황톳길 가의 풀꽃처럼 순박하고 산나물처럼 상큼한 글을 쓰고 싶다. 어머니의 마음과 손맛에서 우러난 진국 맛이 나는 수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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