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쌓이고 또 쌓이면 가슴에서 무지개가 피어오른다는 것을 아는 남자 발우,
고아 출신으로 산속의 암자에서 자라온 그는 같은 고아 출신의 누이와 누나를 동시에 사랑했지만 아무와도 아무 일도 벌이지 못했다.
누이를 임신시키고 달아난 사내를 찾아서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식칼 한 자루를 가슴에 품고 집을 나섰지만,
살인에도 실패한다
나쁜 놈이 되어야겠다는, 착한 놈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창끝 같은 인식으로
살인을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죽이기는커녕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고 만 그는
이제 자기 자신을 땅에 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디에 묻을 것인가.
고향이 어디인지 알 수는 없다 해도, 어린 시절을 보낸 암자 근처를 지목하고 찾아갔지만,
이런저런 인연의 끄나풀과 얽히면서 자살에도 실패한 채로 어머니의 돈을 훔치고,
결혼한 누님의 돈도 훔쳐서 서울로 달아난다.
서울에 아파트를 구하고,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사채업을 시작했던 그는
어느 날부터 사업은 후배에게 일임한 채로 책을 읽기 시작했던가 보다.
사업을 도맡아서 처리해내던 후배는 자산 일체를 처분해서 잠적해 버리고,
아내는 책이나 읽어대는 남편은 필요 없다고 이혼을 통보한다.
이혼한 아내는 바로 재혼을 했는데 그 남자가 다름 아닌 사업체를 말아먹고 잠적한 그 후배였다.
이제 정말로 자신의 몸뚱이를 땅에 묻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또 한 번 재래시장에 나가 삽 한 자루를 사서 들고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암자 근처로 내려간다.
팔 년여 만에 발을 디딘 고향땅의 한 모텔에서 감옥을 탈출한 사내를 연모한다는 카운터의
빵긋이 웃기를 잘하는 열일곱 살 소녀와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고,
사람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곧 정신병동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둥
파격적인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소녀와의 대화에서 그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오오, 그러고 보니 나는 빚이 많구나. 빚이 많아.
이 많은 빚을 갚으려면, 나는 이제부터 죽기는커녕 아프지도 못하고 미치지도 못해야 할 것이다.
중편소설<한줌의 도덕>으로 광남문학상 산문집 <아들을 오빠라 부르는 울엄마 참 예쁘다>출간